인문

불편한 진실을 마주할 용기

김주만 전도사 2025. 7. 25. 09:36

우리는 눈을 뜨자마자 정보의 파도에 휩쓸린다. 스마트폰 알림, 포털의 헤드라인, 알고리즘이 던져주는 영상과 기사들. 클릭 몇 번이면 세계의 사건이 우리의 아침 식탁 위로 배달된다. 그런데 정작 우리가 그 안에서 무엇을 ‘믿고’ 있는지를 돌아보는 일은 거의 없다. 정보의 범람 속에서 진실은 흐릿해지고, 감정은 선동되고, 판단은 마비된다. 그리고 우리는 점점 ‘사실’과 ‘사실처럼 보이는 것’ 사이의 구분을 잃어간다.

 

‘가짜 뉴스’라는 말이 낯설지 않다. 그것은 더 이상 오류의 결과물이 아니다. 일부러 던져진 미끼다. 허위의 정보는 고의적이며, 계산적이고, 교묘하다. 마치 진실처럼 포장된 거짓은, 사회를 분열시키고 사람들 사이의 신뢰를 파괴한다. 한때는 믿을 만했던 언론조차도, 클릭 수와 조회수를 위해 자극적인 표현을 앞세운다. 자극이 곧 경쟁력이고, 분노는 소비를 부른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는, 누군가의 의도 속에서 조종되는 존재가 되어간다.

 

더 심각한 문제는, 그 거짓이 결국 ‘하나의 진실’처럼 작동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확인시켜줄 ‘증거’를 원한다. 그리고 그 욕망은 스스로 비판적 사고를 차단한다. 가짜 뉴스는 바로 그 틈을 파고든다.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아무리 팩트가 반대되더라도, 한 번 형성된 믿음은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거짓을 지적하는 이들을 적대시하거나,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을 ‘비정상’으로 몰아세운다. 결국 우리는 더 단단히 각자의 진영에 갇힌다.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다. 특히 ‘분노’는 인간의 도덕적 감각을 가장 강하게 자극하는 감정이다. 누군가 약자를 괴롭혔다고? 부정한 방식으로 권력을 쥐었다고? 당장 공유 버튼을 누르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 그런데 그 소식이 조작된 것이라면? 누군가의 증언이 허위였다면? 이미 퍼진 기사와 그에 달린 수천 개의 댓글은 되돌릴 수 없다. 우리는 타인의 인격을 한순간에 무너뜨리고, 때로는 그 생을 끝장내기도 한다. 그러고도 남는 것은 책임지지 않는 침묵과 지워지지 않는 상처뿐이다.

 

진실은 느리다. 복잡하고 불편하다. 그래서 외면당한다. 하지만 진실만이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 거짓은 순간의 쾌감을 줄지 몰라도, 결국 더 깊은 혼란과 불신을 낳는다. 사회는 점점 갈라지고, 대화는 실종된다. 더 이상 상대의 말을 ‘듣는’ 사람이 없다. 서로가 서로를 이미 규정지었고, 다른 입장을 ‘거짓’이라고 단정한 채 자신의 말만 외친다. 이것이 가짜 뉴스가 만들어낸 또 다른 폐해다. 공동체의 해체, 언어의 단절, 진실의 소멸.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해답은 복잡하지 않다. 그러나 어렵다. 멈추는 것이다. 멈추어야 생각할 수 있다. 기사를 읽고 바로 분노하거나, 공유 버튼을 누르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해야 한다. “이 정보는 어디서 왔는가?”, “출처는 신뢰할 만한가?”, “왜 나는 이 기사에 끌리는가?” 묻고, 확인하고, 의심하는 일. 그것이 진실을 향한 첫 걸음이다. 우리는 더 이상 정보의 수동적 소비자가 아니다. 우리는 스스로 사고할 수 있는 존재이며, 그러한 책임을 지고 있다.

 

또한 우리는 ‘들어야’ 한다. 자기 생각과 다른 목소리를 무시하지 말고, 불편하더라도 귀 기울여야 한다. 진실은 언제나 단순한 이분법 너머에 있기 때문이다. 어떤 문제든 흑백으로 나눌 수 없다. 우리가 서 있는 입장 너머에도 누군가의 눈물과 상처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공감은 모든 진실 탐구의 출발점이다. 그리고 그 공감은 자기 확신을 흔들 용기에서 비롯된다.

 

가짜 뉴스의 문제는 정보 자체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을 유포하고 소비하는 인간의 문제다. 그리고 그 인간의 욕망과 두려움, 분노와 편견은 기술이나 정책으로 통제되지 않는다. 그것은 각자가 마주해야 할 내면의 문제다. 우리는 누구보다 ‘자기 자신’의 뉴스를 가장 믿는다. 내가 듣고 싶은 말, 내가 보고 싶은 장면. 그 자아의 거울 속에서 진실은 왜곡된다. 결국 진실을 향한 싸움은 ‘자기 자신’을 향한 싸움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묻는다. “진실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결국 세상은 힘 있는 자의 말이 이기는 거 아닙니까?” 그런 냉소는 현실의 일부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절망에 안주할 수 없다. 진실은 여전히 의미가 있다. 왜냐하면 진실만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기 때문이다. 진실을 향해 나아가려는 의지, 그 불편한 길을 감수하려는 마음, 그것이 우리가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는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다. 거짓이 세상을 지배하도록 내버려 둘 것인가? 아니면 진실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갈 것인가? 그것은 거대한 권력이나 제도의 문제가 아니다. 바로 ‘나’의 문제다. 내가 진실을 택할 수 없다면, 이 사회는 결코 진실로 나아갈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질문해야 한다. 나는 지금 진실을 선택하고 있는가?

 

진실은 쉽게 오지 않는다. 그러나 그 길을 포기하지 않을 때, 우리는 인간다움을 회복할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불편하고 느린 선택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무너져가는 공동체를 다시 세우는 유일한 길이다. 진실은, 여전히 우리의 유일한 희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