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언론의 칼끝에 선 인간: 생명을 지키는 저널리즘을 향하여

김주만 전도사 2025. 7. 25. 09:32

언론은 본래 공적 신뢰를 기반으로 움직이는 사회의 눈과 귀이다. 그러나 오늘날, 언론은 그 본래의 사명을 망각한 채, 점점 더 무거운 칼날을 들고 사람을 겨눈다. 그것은 정보를 전하는 도구가 아니라, 사람을 재단하고 낙인찍는 법정이 되었고, 때로는 생명을 앗아가는 흉기가 되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진실을 찾는 것이 오히려 더 어렵고, 언론의 이름으로 포장된 거짓이 손쉽게 사람의 운명을 결정짓는 시대이다.

 

우리는 너무 많은 죽음을 목격했다. 실체 없는 의혹이 대서특필되고,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 확신처럼 전파된다. 그 결과, 누군가는 자신의 자리를 잃고, 가정을 잃고, 존재의 의미마저 빼앗긴다. 때로는, 더는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그리고 언론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음 사건으로 넘어간다. 책임은 흐릿해지고, 기억은 잊힌다. 하지만 그 상처는 가족의 삶에, 공동체의 기억에, 사회의 심연에 남는다.

 

언론의 가장 큰 죄는, 누군가의 고통을 ‘소재’로 전락시키는 데 있다. 인간의 삶이 파편이 되고, 상처가 소비되고, 죽음조차 시청률을 위한 하나의 숫자로 계산된다. 기사 한 줄이, 헤드라인 하나가, 어떤 이에게는 평생 지워지지 않는 낙인이 된다. 언론은 진실을 다루는 손끝에서 ‘생명’을 다루고 있음을 잊고 있다. 단어 하나의 무게가 곧 생명을 지탱하거나 무너뜨릴 수 있음을, 우리는 너무 많은 죽음 이후에야 깨닫는다.

 

그렇다면 언론은 왜 이렇게 변질되었는가? 자극이 클릭을 부르고, 클릭이 수익을 낳는 구조 속에서 언론은 본질을 팔아 넘기기 시작했다. 진실보다는 속도가 중요해졌고, 공정함보다는 영향력이, 윤리보다는 이익이 우선되었다. 미디어는 더 이상 진실을 찾지 않는다. 진실을 꾸며낸다. 그리고 그 왜곡된 진실 앞에, 우리는 더 이상 이의를 제기할 힘을 잃어가고 있다.

 

언론은 단순히 ‘알 권리’를 제공하는 기관이 아니다. 그것은 시민들의 인식을 형성하고, 집단의 판단을 움직이며, 공동체의 운명을 좌우하는 권력을 가진다. 그렇기에 언론의 보도는 언어의 형식으로 포장된 행위가 아니라, 사회적 작용이자 윤리적 판단이다. 언론이 자신이 어떤 권력을 가지고 있는지를 망각할 때, 그 권력은 반드시 폭력이 된다. 진실을 밝히려던 빛이 오히려 그림자를 만들고, 정의를 향하던 칼끝이 사람을 베는 날카로움이 될 때, 언론은 공기와 같은 존재가 아니라 재앙과 같은 존재로 기능한다.

 

‘혐오의 유통업자’라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언론은 종종 혐오와 편견을 ‘기사’라는 이름으로 유통시킨다. 특정 집단에 대한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각인시키고, 사람들의 의식을 조작하며, 갈등과 분열을 확산시킨다. 이것은 단순한 서술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권력의 문제이며, 인격에 대한 침해이고, 생명에 대한 폭력이다.

 

언론의 칼날은 단순히 잘못된 정보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그 이면에는 편향된 시선, 윤리의 부재, 책임 회피라는 구조적 병폐가 있다. 그리고 이 구조는 언론이 권력과 유착할수록 강화되고, 권력을 감시하는 대신 권력의 언어를 흉내 내게 만든다. 우리는 이것을 너무도 뼈저리게 경험해왔다. 특정한 정권에 유리한 보도는 확대 재생산되고, 불편한 진실은 가려지거나 삭제된다. 언론이 중립이라는 이름 아래 침묵할 때, 그것은 중립이 아니라 기만이다. 때로는 말하지 않는 것이 더 큰 폭력이 된다.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인가? 첫째로, 언론은 스스로의 윤리 의식을 되찾아야 한다. 언론인이란 단순한 직업이 아니다. 그것은 ‘말의 권한’을 가진 자로서, 반드시 진실과 공정함, 그리고 생명에 대한 감각을 함께 품어야 하는 소명이다. 오보는 실수가 아니다. 그 실수가 반복되고 의도성을 가질 때, 그것은 죄이며 폭력이다. 언론은 ‘사과’라는 말을 가볍게 하지 말아야 한다. 잘못된 보도의 피해는 한 줄의 사과문으로 회복되지 않는다.

 

둘째로, 강력한 책임 체계가 필요하다. 언론이 잘못된 보도를 했을 때, 그에 합당한 법적·윤리적 책임을 져야 한다.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은 단지 언론을 제재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생명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이다. 표현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하지만, 그 자유가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고 생명을 위협할 때는 반드시 제어되어야 한다. 자유는 방종이 아니라, 책임과 균형 위에 존재해야 한다.

 

셋째로, 시민이 깨어 있어야 한다. 언론이 제 기능을 상실했을 때, 가장 중요한 감시자는 바로 시민이다. 우리는 더 이상 수동적인 정보 소비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의심하고, 질문하고, 반응하는 시민이 있을 때만, 언론은 자정의 힘을 되찾는다. 그리고 우리는 언론이 어떤 보도를 하는가를 넘어서, 무엇을 보도하지 않는가를 함께 읽어내야 한다. 진실은 때로 ‘침묵의 가장자리’에 숨어 있다.

 

마지막으로, 언론은 생명을 지키는 일에 복무해야 한다. 언론이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은 누군가의 삶을 구하는 것이다. 고통 속에 있는 자를 비추고, 외면당한 목소리를 세상 가운데 전하며, 왜곡된 구조를 드러내는 일. 그것이 언론이 존재해야 할 이유다. 언론은 더 이상 “누가 잘못했는가”를 묻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된다.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를 묻는 언론, “누가 고통받고 있는가”를 찾는 언론, 그리고 “무엇이 진짜 생명을 살리는가”를 증언하는 언론이 되어야 한다.

 

사람을 죽이는 언론은 이제 멈추어야 한다. 말의 권력이 칼이 되지 않도록, 다시 생명의 숨결을 담는 통로가 되도록. 언론은 진실을 말하는 자가 아니라, 생명을 지키는 자여야 한다. 이것이 언론에게 주어진 가장 거룩한 책임이며, 우리가 회복해야 할 저널리즘의 윤리이다. 지금, 우리는 다시 물어야 한다. 당신의 말은 누군가를 살리고 있는가, 아니면 천천히 죽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