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사랑은 타인을 소유하는가, 아니면 살리는가: 사르트르와 기독교 사이에서

김주만 전도사 2025. 7. 24. 06:48

사랑은 인간 존재의 가장 깊은 갈망이자, 가장 많은 오해가 뒤따르는 감정이다. 그것은 위대한 문학과 예술의 주제였고, 윤리학과 신학, 철학과 심리학의 탐구 대상이었다. 그러나 사랑을 논하는 많은 담론 가운데, 사르트르와 기독교의 입장은 가장 극단적이며 동시에 가장 인간적이다. 한쪽은 타자와의 관계에서 오는 불가피한 억압을 고발하고, 다른 한쪽은 타자의 고유성과 존엄을 전제한 무조건적 수용을 선언한다. 이 두 입장은 상반되지만, 오히려 서로의 결핍을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다.

장-폴 사르트르는 사랑이 타자에 대한 지배의 욕망으로 변질되는 순간을 날카롭게 포착했다. 그는 우리가 사랑하는 이를 통해 자신을 확인하고자 할 때, 결국 그를 객체화할 수밖에 없다는 진실을 숨기지 않았다.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그의 선언은 사랑이 곧 자유와 자유의 충돌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사랑은 둘 사이의 자발적 결합이어야 하지만, 한쪽이 다른 쪽을 자신의 필요나 이상에 맞추려는 순간, 그 관계는 지옥의 고통으로 전락한다. 이때 사랑은 관계가 아니라 일방적 투사이고, 존중이 아니라 소유이다. 사르트르의 철학은 이 냉정한 진단을 통해, 사랑을 환상에서 현실로 끌어내린다.

그러나 사르트르의 사랑에는 한계가 있다. 그의 세계에는 은혜가 없고, 회복이 없다. 사랑은 언제나 실패할 운명을 지니며, 그 실패는 결국 인간 존재의 구조적 모순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비극적 구조 앞에서, 인간은 사랑을 꿈꾸지만 실현하지 못하고, 가까이 다가가지만 끝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의 사랑은 끝내 관계를 이루지 못하고, 두 개의 고독한 자유가 서로를 파괴하는 장이 된다.

반면 기독교는 사랑의 시작을 하나님으로부터 본다. 사랑은 인간의 필요나 감정 이전에, 하나님이 인간에게 베푸신 본질적인 은총이다. 여기서 사랑은 계산도, 자격도, 조건도 없이 주어지는 아가페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에서 드러난 이 사랑은 타자를 억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를 살리기 위해 자기를 비운다. 기독교의 사랑은 자기 부정이 아니라 자기 초월이며, 자기를 소모함으로써 타자의 생명을 살리는 신적 방식이다. 이런 사랑은 타자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 그가 있는 그대로 존재할 수 있도록 옆에 서며 함께 걸을 뿐이다.

기독교적 사랑은 인간의 한계를 알고 있다. 우리는 모두 불완전하고, 이해할 수 없는 타자 앞에서 흔들린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은 가능하다고 선언한다. 왜냐하면 사랑은 인간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고, 그 선물은 우리의 부족함 속에서도 역사하기 때문이다. 타인을 사랑하는 것은 곧 그가 누구인지를 존중하고, 그가 변화되기 전부터 이미 그 존재를 수용하는 행위이다. 사랑은 조건을 걸지 않는다. 심지어 원수에게도 그 사랑은 닿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사랑이야말로 사르트르가 말한 존재론적 지옥을 천국으로 바꾸는 가능성이다.

물론 기독교적 사랑도 낭만적인 신화는 아니다. 이 사랑은 현실의 고통 속에서 실천되어야 한다. 쉽게 배신당하고, 오해받고, 때로는 거절당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것은 감정의 파도가 아니라, 의지의 선택이고, 신앙의 순종이며, 공동체를 향한 소망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랑은 결국 인간의 이기적 욕망을 넘어서는 통로이며,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을 증언하는 구체적 실천이다.

이렇게 볼 때, 사르트르와 기독교는 사랑에 대한 두 개의 언어를 말한다. 하나는 상처와 실패의 언어이고, 다른 하나는 희생과 회복의 언어다. 전자는 사랑의 위험을 경고하며, 후자는 사랑의 가능성을 열어 보인다. 사르트르는 사랑의 욕망이 필연적으로 타자를 억압한다고 보았고, 기독교는 사랑이 타자를 살리는 길임을 고백했다. 양자는 서로 반대되는 진술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인간이라는 동일한 존재를 바라보며, 서로 다른 길로 나아가는 지도와도 같다.

오늘날 우리는 여전히 이 두 갈래의 길 위에 서 있다. 자아 실현이라는 이름으로 타인을 통제하려는 충동과, 그 충동을 넘어서 타자와 함께 살아가려는 희생 사이에서 갈등한다. 정보화 시대의 빠른 관계 속에서, 사랑은 점점 더 얕아지고 가벼워지지만, 그만큼 더 절실하고 목마른 감정이 되었다. 우리는 더 많이 사랑을 말하지만, 더 적게 사랑을 실천한다. 더 많은 사랑을 갈망하지만, 더 쉽게 관계를 포기한다. 이때, 사르트르의 경고와 기독교의 희망은 동시에 들려야 한다. 하나는 사랑의 그림자를, 다른 하나는 빛을 가리킨다.

사랑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그것은 때로 타인을 지옥에 빠뜨릴 수 있고, 또 다른 때에는 그 지옥에서 타인을 꺼내는 손길이 될 수 있다. 우리가 어떤 사랑을 선택할 것인가는, 우리가 어떤 인간이 되고자 하는지에 대한 선택과 다르지 않다. 결국 사랑은 질문이다. 우리는 타인을 소유할 것인가, 아니면 살릴 것인가? 그 질문 앞에 서는 것이 곧, 인간이라는 존재가 지닌 가장 윤리적이고 가장 실존적인 고백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