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인간은 아직 서문에 있다

김주만 전도사 2025. 8. 1. 10:08

거리는 조용하다. 사람들은 평소처럼 걷고, 커피를 마시며, 휴대폰을 내려다본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또 다른 세계가 움직이고 있다. 빛보다 빠른 속도로 연산이 이루어지고, 방대한 양의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분석되며, 그 분석의 결과는 인간보다 먼저 판단을 내린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알고리즘은 누군가의 뉴스 피드를 구성하고, 금융 자산의 흐름을 조정하며, 병원의 진단 보조를 수행한다. 이 거대한 흐름 속에서, 우리는 기술의 중심이 아니라, 가장자리에 서서 그 전개를 목격하고 있다.

 

한때 인간만이 할 수 있다고 여겨졌던 일들—의사결정, 창작, 판단, 심지어 정서적 공감까지—이제는 기계의 연산으로 가능해지고 있다. 인공지능은 단순한 계산기를 넘어선다. 그것은 하나의 두뇌처럼 생각하고, 학습하며, 스스로 발전한다. 인간은 점점 더 많은 역할을 기술에게 위임하고 있고, 위임된 결정들은 다시 인간의 삶을 형성하고 있다. 교통체증의 완화, 소비 패턴의 예측, 취향에 맞는 콘텐츠 추천, 심지어 사형 여부를 결정하는 판결까지—인공지능은 인간의 영역을 조금씩 잠식해 들어온다.

 

우리는 그것을 ‘진보’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 진보의 방향은 누구의 설계에 따라 진행되고 있는가. 기계는 자신이 무엇을 위해 작동하는지 모른다. 판단도, 책임도, 윤리도 갖지 않는다. 결국 질문은 인간에게 돌아온다. 우리는 이 기술을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는 기술을 어떤 방식으로 살아낼 것인가?

 

편리함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는 ‘선택’이라는 인간의 고유 권리를 점점 기술에게 넘긴다. 단 몇 초 만에 맞춤형 추천을 받고, 복잡한 판단을 대신 받아들이는 데 익숙해진다. 그러나 선택을 위임하는 순간, 책임도 흐려진다. 누가 결정했는가? 누가 책임지는가? 문제가 발생했을 때, 우리는 ‘알고리즘의 오류’를 말하지만, 그 알고리즘을 만든 사람은 우리 자신이다.

 

예술 영역에서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시와 음악, 회화와 소설, 모든 창작의 영역에서 기계는 이미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있다. 인공지능이 쓴 시가 감동을 주고, 기계가 작곡한 음악이 사람을 울린다. 우리는 이제 ‘누가 썼는가’보다 ‘무엇을 느끼는가’에 집중하게 되었다. 하지만 창작이 단지 산출의 문제라면, 인간의 내면은 어디에 위치하게 되는가. 창작은 결과물 이전에 고뇌와 질문의 과정이다. 그 삶의 응축이 사라진다면, 우리는 그 예술을 ‘살아있는 것’이라 부를 수 있을까.

 

이 모든 질문은 결국, ‘무엇이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가’라는 본질로 돌아간다. 인간은 단순히 계산하고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다. 인간은 기억하고, 사랑하며, 고통을 이해하고, 의미를 묻는 존재다. 기술은 정답을 줄 수 있다. 하지만 의미는 줄 수 없다. 의미는 해석과 맥락, 그리고 존재의 물음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인간과 기계는 갈라선다.

 

기술의 발전은 멈추지 않는다. 그것을 막으려는 시도는 허망하다. 그러나 방향을 결정할 수는 있다. 기술이 인간을 이롭게 할 것인가, 아니면 인간을 소외시키는가의 갈림길은 우리가 어떤 원칙을 세우는가에 달려 있다. 기술은 본래 중립적이다. 그것이 약자를 보호하는 방패가 될 수도 있고, 감시의 도구가 될 수도 있다. 어느 쪽이 될지는 결국 ‘어떤 인간’을 꿈꾸느냐에 달려 있다.

 

중요한 것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다. 그것을 사용하는 우리의 태도다. 기술에 대한 맹신도, 기술에 대한 공포도 모두 피상적이다. 진짜 문제는 기술을 통해 우리가 어떤 삶을 추구하느냐이다. 기계가 인간을 닮아가는 시대, 우리는 오히려 인간다움이 무엇인지를 더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공감, 책임, 연대, 해석, 고통의 이해와 수용, 이것이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우리는 아직 처음 문장을 쓰는 중이다. 이 거대한 서사의 저자는 인공지능이 아니다. 인간이다. 우리에게는 방향을 설계할 힘이 있고, 서사를 수정할 자유가 있으며, 결말을 바꿀 가능성이 있다. 기술이 그 첫 문장을 대신 쓸 수는 없다. 우리는 지금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어떤 서문을 쓸 것인가. 그것이 우리가 쓰는 역사이며, 인간됨의 선언이다.

 

인공지능은 빠르다. 그러나 인간은 깊다. 그리고 깊이는 언제나 방향을 낳는다. 그렇기에 미래는 속도보다 방향을 먼저 묻는다. 우리는 묻고 있는가? 우리는 충분히, 인간답게, 물어보고 있는가? 미래는 아직 쓰여지지 않았다. 그 첫 문장은, 지금 당신의 손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