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말의 정치, 플랫폼의 권력

김주만 전도사 2025. 7. 30. 09:32

정치는 언제나 말로 움직여왔다. 고대 아고라의 토론, 중세 강단의 설교, 근대 국회의 연설, 20세기 방송 토론까지. 말은 설득이고 동원이며, 해명이고 선언이었다. 그러나 지금, 정치적 언어는 완전히 새로운 무대 위에 올라섰다. 그것은 디지털이라는 가상 광장이고, 미디어 플랫폼이라는 유통망이며, 알고리즘이라는 조율자를 통과한 뒤의 말이다. 우리는 이제 ‘정치적 말’이 아니라 ‘플랫폼화된 정치 언어’를 살아간다. 말은 여전히 중심에 있지만, 그 말의 구조, 도달 방식, 의미 형성의 방식은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가장 큰 변화는 ‘속도’다. 과거의 정치 말은 구조를 따라 흘렀다. 정당이 말했고, 언론이 중계했으며, 유권자는 듣고 판단했다. 그러나 이제 말은 구조 없이 튀어나오고, 실시간으로 공유되며, 해석은 즉흥적이다. 정치인은 기자를 통하지 않아도 된다. 트윗 하나로 하루를 장악하고, 짧은 동영상으로 여론을 바꾼다. 이 말은 너무 빨라서 수정도, 숙고도, 맥락도 따라가지 못한다. 언어는 남지만, 책임은 남지 않는다. 그래서 말은 많지만 진실은 줄어든다.

 

정보는 민주화되었지만, 진실은 탈중심화되었다. 모든 사람이 발언할 수 있는 시대는 곧 누구도 발언의 무게를 감당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말할 권리’는 넘쳐나지만, ‘말의 책임’은 희박하다. 디지털 시대의 말은 공공성을 지향하기보다, 관심을 끌고 분노를 유발하고, 자신의 진영을 확인하는 데 집중된다. 그 결과, 말은 대화보다 선언이 되고, 질문보다 확신이 되고, 타협보다 구호가 된다.

 

이 모든 변화의 배후에는 알고리즘이 있다. 디지털 플랫폼은 중립적이지 않다. 사람들을 연결해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만 끊임없이 연결시키는 폐쇄된 회랑을 만든다. 우리가 소비하는 뉴스, 듣는 말, 보는 영상은 대부분 ‘내가 좋아할 것’이라는 기준으로 걸러진다. 그 안에는 반대 의견도 없고, 낯선 현실도 없다. 이른바 ‘에코 챔버(Echo Chamber)’—울림만 있고 대화는 없는 공간이다. 그래서 우리는 점점 더 단단해지지만, 동시에 더 쉽게 분열된다.

 

정치인은 이 구조를 잘 안다. 그래서 그들도 말을 바꾼다. 연설문보다 짧은 영상, 정책보다 감정 자극, 맥락보다 표어. 정치가 아닌 마케팅의 언어로, 설득이 아닌 유혹의 언어로 전환된다. 온라인 정치 커뮤니케이션은 이제 전통적인 정치 기술보다 소셜 미디어 전략에 의존하고, 콘텐츠가 아닌 트렌드에 기대며, 진실보다 조회수를 목표로 한다. 정치인은 더 이상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보이는 사람’이 되며, 플랫폼이 강요하는 언어를 따라 말하게 된다.

 

여기에 또 하나의 권력이 생긴다. 바로 ‘플랫폼 그 자체’다. 과거 권력은 말하는 자에게 있었지만, 이제는 어떤 말이 전달되고, 어떤 말이 사라지는지를 결정하는 자가 진짜 권력자가 되었다. 우리는 누가 무슨 말을 했는지를 보는 것보다, 어떤 말이 ‘추천’되고 ‘확산’되는지를 더 주목한다. 플랫폼은 우리에게 ‘말의 숲’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말의 정원’을 제공한다. 이미 가꾸어지고 정리된 언어들, 추천받을 만하다고 판단된 견해들. 그 정원의 경계를 벗어난 말은 보이지 않고, 곧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아진다.

 

이것이 오늘날 정치 언어의 구조다. 더 많이 말할 수 있고, 더 넓게 퍼질 수 있으며, 더 즉각적으로 반응할 수 있지만, 동시에 더 쉽게 조작될 수 있고, 더 깊은 분열을 초래하며, 더 불투명한 권력을 강화한다. 말의 홍수 속에 우리는 판단보다 반응을 선택하고, 숙고보다 클릭을 먼저 한다. 말은 많지만 말의 질은 낮아지고, 진영만 커지고 진실은 무너진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정치가 여전히 말로 움직인다면, 우리는 그 말이 어디서 오고, 누구의 말이며, 어떤 구조를 통해 확산되는지를 분별해야 한다. 숙고는 힘들지만, 정치적 말이 정치적 삶을 바꾸는 유일한 경로라면, 우리는 그 말 앞에서 멈추어야 한다. 듣고, 묻고, 비교하고, 때로는 말하지 않는 선택을 통해 말의 구조를 의심하고 해체해야 한다. 그것이 오늘날 ‘정치적 시민’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다.

 

정치는 여전히 말로 움직인다. 그러나 그 말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떤 공간에서 유통되며, 어떤 기술에 의해 선택되는지를 아는 자만이 정치에 진짜 참여할 수 있다. 이제 말은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권력이고 구조이고, 그 자체로 하나의 정치적 결정이다. 우리는 오늘도 어떤 말에 노출되며, 어떤 말에 반응할 것인가? 그것이 곧 우리가 선택하는 정치의 얼굴이 된다.